명사인터뷰

[Vol.30]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참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살아보면 대부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없어요. 어릴 때 뜻을 세운다고 해서 인생이 그 뜻대로 잘 안 이루어집니다. 저도 제가 시나 소설을 논하며 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요. 어쩌면 거꾸로‘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4월 4일 꿈트리는‘공대생을 울린 시 강의’로 유명한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56)를 만났다. ‘공대생을 울린 시 강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강의는 사실 2012년 한양대 융복합 교양강좌의 일환으로 처음 개설된 공대생 대상‘문화혼융의 시읽기’를 일컫는다. 이 수업은 당시 매 강의마다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최우수 교양과목으로 선정됐다. 강의 대상도 공대를 넘어 경영대, 법대 등으로까지 확대됐다. 이 강의 내용을 다듬어 묶은 책《시를 잊은 그대에게》(휴머니스트)는 13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로 기록됐다.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든 인문학을 자조하는 ‘인구론’,‘문송’같은 신조어가 나오는가 하면 인문과 기술의 융합을 상징하는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로 인해 이상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모순적인 우리 사회를 향해 정 교수는 강의를 통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교수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교수가 한국에 있다면 바로 그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각종 강연은 물론 TV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오는 출연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는데 오전 일과를 보낼 정도로 바쁜 정 교수는 2017년부터 한양대 입학관리처장을 맡고 있다. 입학설명회 등을 통해 그는 수많은 고교생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을지 모른다’는 지론을 항상 펼친다고 한다.

“불평불만만 하며‘어쩌다 내가 여기에 왔지?’하고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온 데는 무슨 뜻이 있나봐’라고 뜻을 찾아가는 자들이 결국 뜻을 이루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세들이 그걸 보고 ‘저 봐, 저 사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잖아’이렇게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말하는 거 아닐까요. 어리고 젊은 나이에 뜻이 있으면 얼마나 대단하고 꿈이 있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많은 어른들이 꿈을 가지라고 하지만 아이들로선 꿈을 어떻게 찾아요, 찾았다 한들 그게 맞을까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정 교수는 어린 시절 다재다능한 소년이었다. 리더십도 뛰어나고 성격도 활달해 모든 것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입학처장의 관점에서 요즘 식이라면‘전과목 학종(학생부종합전형)형 인간’에 비유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원래 잘하던 것은 계속 잘했고, 잘 못하는 것도 잘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던” 욕심 많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아마 제가 판검사나 국회의원 정도 돼있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만큼 출세해야 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당시엔 공부 말고는 할 일이 없었고 초등학생 시절 밤 12시 넘어서까지 공부하기도 했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출세지향적이던 제가 지금 학생들에게 문학과 교육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습니다. 지금은 제가 가진 재능과 에너지를 출세하는 데 쓰지 않았다는 것을 도리어 감사하게 여깁니다.”

공부 잘하던 욕심 많은 그의 삶도 결코 꽃길만은 아니었다. 20대 한창 시험으로 평가받아야 할 때 두 번의 좌절이 찾아왔다. 고3이던 1980년 7월 30일 갑자기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었고, 변명 같지만 그 때문인지 원하던 학과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때의 좌절이 지금 제게는 가장 감사한 일이 됐습니다. 나를 변화시킨 중요한 계기가 됐으니까요. 학창시절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자신감과 용기가 사라진 대신 우울과 비겁함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교만했던 한 인간이 겸손해진 거죠.”

1980년대 초반 대학은 공부에 집중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이 계속 됐고 청춘의 날들은 그야말로 피폐했다. 그때 그를 위로해준 글귀가 바로‘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말로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었다.

“고3때까지는 저는 무척 교만했고 대학 이후로도 알 수 없는 분노에 차 있었습니다.‘내가 옛날에는 잘나갔는데 지금은 왜 못나가는 거지’하는 억울한 마음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일체유심조 사상을 알게 되고 마음수련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지금이 정상인데 과거에 이상하게 잘나갈 수도 있었던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죠.”

학과 공부를 한 번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했다. 문제는 이전까지 그는 문학도 교육에도 1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교수님들에게 인정받다 보니 ‘내가 문학도 잘하는가 보다’짐작하며 공부를 계속했다.

어쩌다 보니 문학을 하게 됐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늘 자신이 없었다.‘문학을 정말로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저 직업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닌가’는 생각이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문학은 몰라도 교육에는 자신이 있었다. 중학교 아침자습 시간에 칠판 앞에 서서 급우들을 가르쳤었고 스스로 잘 가르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자만은 또 한 번 여지없이 깨졌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나간 교생실습에서 열한 살짜리 아이를 만났어요. 딱 보는 순간 얼굴이 범죄형이었어요. 그 전까지 교사를 하기엔 내가 아깝다고 생각했을 만큼 건방진 생각을 했었는데 그 아이를 본 순간 나의 무능함을 깨달았던 거죠. ‘내가 저 아이한테 국어는 가르칠 수 있어도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열한 살짜리 아이 얼굴에 ‘범죄형’이라는 글자가 보이도록 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면 화가 났고 한편 교육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는 외침으로 가득 차 있던 1980년대 대학가, 잘나가는 서울대 사범대생은 열한 살 아이 앞에서 자신의 존재와 능력이 한없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꽃으로 살기 위해서는 꽃밭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꽃밭이 별 건가 꽃이 모이면 꽃밭이지’라는 생각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평생 살면서 꽃 몇 송이도 못 만드는데 꽃밭을 만들겠다고 거짓말하는 것보다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꽃으로 만드는 것, 그게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국회의원이나 소위 출세한 사람들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길을 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대학 시절 문학청년 친구가 부러웠고, 교육에 뜻이 있는 친구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런 친구들은 문학, 교육을 업으로 하고 있지 않더라고 말하는 정 교수는 요즘도 간증삼아 이렇게 이야기 한다.“어린 시절 나는 문학에 대한 생각 1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그냥 살다보니 국어교육과를 가게 된 것일 뿐이다. 문학도 교육도 몰랐지만 지금 나는 문학교육을 하고 있다. 그렇게 문학, 교육이 묘하게 내 인생 안에서 녹아있더라.”

두 번째 좌절은 24살 대학원 시험 보기 하루 전에 찾아왔다. 모범답안을 만들어 암기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하예지고 평생 처음 느껴보는 극도의 공포감으로 숨을 쉴 수 없었다. 공황장애였다. 그 동안 ‘일체유심조’사상을 담아두고 버텨왔던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여전히 자기 마음의 주인이 못됐던 것이다.

“4년 전에 대학입학 시험을 망쳤던 기억이 생각나서 ‘넌 못할 거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 전까지 시험이라고는 한 번도 망쳐보지 않았던 사람이 입시 때 한번 크게 데고 나니 성인이 돼서도 극복이 안됐던 거죠. 그 날 아버지 방에 가서 아버지를 껴안고 잤습니다. 그리고 나니 다시 살아난 것 같았어요. 무사히 시험을 보고 대학원을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성공담이 아닙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실패의 경험이 한 번에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는 겁니다. 그 뒤로도 저는 스트레스가 아주 많았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5년 간 여고에서 교사생활도 했다. 그때의 현장경험이 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31살에 뒤늦게 박사과정을 시작해 35살에 박사학위를 땄고 청주교육대에서 10년간 초등 예비교사 양성하는 일을 했다. 2008년 한양대 사범대로 옮긴 후 중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정 교수는 청소년들에게 너무 목표중심으로 살지 말 것을 조언했다.

“행복은 어떤 지점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행복한 게 행복이지 그 목적지의 높낮이가 어떻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8000미터 산을 욕하고 짜증내면서 올라가는 것보다 3000미터 산을 즐겁게 올라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에요. 한양대를 목표로 했다가 한양대 못 가면 실패했다고 할 것 아닌가요.”

입학처장으로서 한양대가 학생을 뽑고자 하는 방법도 어떤 과정을 밟았나에 따라 결과를 주는 것입니다. “제가 곧잘 입시와 결혼을 비유해서 이야기합니다. 결혼을 목표로 연애를 하면 얼마나 힘들까요? 더럽지만 참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결혼에 골인하면 행복할까요? 연애해서 결혼하는 겁니다. 결혼하려고 연애하는 것 아니고요. 열심히 연애했는데 결혼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실패했느냐,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랑 하면 됩니다. 실패한 연애는 없습니다.”

30여 년간 우리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느낀 문제점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교사나 학부모가 너무 목표 지향적이다 보니 아이들로 하여금 과정을 즐기게 하지 못한 것, 그래서 공부를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교육은 전문가를 키우는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를 키우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공부 잘해? 못해?’ 묻지 말고 ‘공부 좋아해? 싫어해?’ 이렇게 물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중고교 교사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어서 대학에 보내면 대학에서 진짜 공부를 시키면 됩니다.”

 

정 교수는 또 대한민국 교육이 컴퓨터 게임만 같으면 성공한다고 말했다.

“컴퓨터 게임, 정말 힘들지만 재미있습니다. 재밌으니까 그만한 시행착오를 밤을 새서 어렵지만 열심히 한다. 한 스테이지를 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형벌 같은 겁니다. 그런데도 그 스테이지를 넘으니까 너무 기뻐서 또 도전하게 됩니다. 얼마나 쾌감을 느꼈으면 밤을 새서라도 스테이지2로 올라가고 싶겠습니까. 그런 것을 이른바 ‘자기주도학습’이라고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가 재미를 발견해서 더 높은 수준으로 가고 싶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교 때까지 힘든 과정을 참고 목표지점인 대학에 가는 순간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풍조도 문제임을 지적했다.

“대학을 왜 가야하느냐,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뜀틀 높이뛰기를 예로 들면 3단, 4단, 5단 올라가는 것이 힘습니다. 만일 내 꿈이 7단이 목표라면 3단부터 한 단계씩 넘어야 합니다. 매순간이 고통의 걸림돌 같지만 실은 그것이 성공을 향해 가는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단 넘어야 4단 가고, 그 다음에 5단을 넘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도 대학입시를 인생을 가르는 목표라 생각하지 마세요. 교사들도 누구나 가는 길이니 아이들이 즐겁게 재미를 그 길을 갈 수 있게 이끌어주세요.”

◆정재찬 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문학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시의 이념과 논리》, 《문학교육의 사회학을 위하여》, 《문학교육의 현상과 인식》, 《문학교육개론 1》(공저), 《문학교육원론》(공저) 등이 있다. 또 13만권이 팔린 에세이집《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2015년 휴머니스트)과《그대를 듣는다 – 정재찬의 시 에세이》(2017년 휴머니스트)도 있다.

[글쓴이] 김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