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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 “문학으로 엮은 ‘또래 이야기의 힘’을 아시나요”


경기 동두천 보영여중 자율동아리 ‘문학사랑’

 

요즘 애들 유튜브나 보고 게임이나 하지, 누가 시나 소설을 쓰냐고?

게임하고 나서 열 받으면 시를 쓰고, 낯설고 힘들었던 해외 단기어학연수 경험을 수필로 써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친구들과 함께 고궁에 다녀온 즐거움을, 때론 불편해진 친구에게 전하는 마음을 글로 써내려가는 문학소녀들이 있다. 내친김에 책도 냈다. 학생들이라면 으레 짐작하는 문집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단행본으로 출판했다.《문학사랑: 2018 보영여중 소녀들의 노래와 이야기》(시는 노래로, 이야기는 산문으로 표현했다). 경기도 동두천 보영여자중학교 문학사랑동아리 부원 7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꿈트리는 3월19일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동에 위치한 보영여중 1층 도서관에서 지도교사 김종상(국어교과) 교사와 4명의 문학소녀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지난해 편집장이자 올해 보영여고 1학년이 된 ‘선배’ 김지연 양도 함께 했다.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꿈은 막연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문학사랑 동아리에서 시도 쓰고 소설도 써 보면서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 입시를 문예창작과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뮤지컬 대본 작가로 활동하고 싶어서 연극도 보러 다니고 관련 책들도 많이 찾아보며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김지연(보영여고 1년)

선배 김지연 양에게 문학사랑 동아리 활동은 자신만의 세계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동시에 삶의 방향성을 갖게 해줬다.

 

오예진 양은 3학년이라 학원 가는 시간이 많아져서 동아리 활동의 부담이 크지만 이미 글쓰는 즐거움을 맛본터라 힘들어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학년 초 동아리 활동을 시작할 때면 김 교사는 학생들을 대형서점으로 데리고 가서 두꺼운 양장본 노트를 한권씩 사 준다. 노트에는 시 구절도 쓰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구성을 기록해 놓으면 나중에 쓸 작품을 위한 좋은 ‘글감’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메모가 더 편한 세대이지만 손으로 끄적이는 감수성을 잊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1학년 때 선배들이 낸 책을 봤어요. 나도 책을 한번 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동아리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싶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수시로 공책이나 휴대폰에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글쓰기를 할 때 도움이 됐어요.” -문은빈(3학년)

3학년이 된 문 양은 올해는 교과 내 동아리인 문학반으로 활동할 계획이지만 글쓰기 훈련은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문학동아리라고 해서 책 읽고 글만 쓰는 것은 아니다. 매달 한 번씩은 학교 외부로 체험활동을 나간다. 지난해 5월엔 김삿갓 전국문학대회 참가를 위해 경기도 양주로, 6월엔 서울 경복궁과 청계천으로, 7월에는 여름방학 문학캠프를 하기 위해 김유정문학촌을, 10월에는 한무숙문학관과 한국시문학회관을 다녀왔다. 잦은 체험학습으로 글은 언제 쓸까 싶지만 학생들은 “많이 보고 많이 느낀 만큼 창작욕은 더 불 타오른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 글쓰기를 할 땐 글감이 별로 없어서 머리를 쥐어짜는 느낌이었지만 체험활동 경험을 하고 생각이 확장되면서 글도 더 깊어졌다는 설명이다.

김 교사는 체험활동을 자주 하는 이유에 대해 “책상에 앉아서 하는 문학으로는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언어 감수성 배양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시나 소설을 쓰는 감성이 있는 학생들은 분명 유튜브를 해도 뭔가 다를 겁니다. 성인이 돼서 마케팅을 하거나, 정치를 해도 아마 다르게 표현하겠죠. 무엇이든 직접 가서 보면 느끼는 게 다릅니다. 그러면 글도 달라지지요. 관념적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고 글을 쓰게 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궁에 갈 때 미리 공부한 눈으로 바라보면 역사 속 인물도 보이고 안 보이던 역사도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동아리는 되도록 외부 활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어떤 때는 꽃을 보러가기도 하고 문학촌이나 문학관에도 가서 느끼는 것을 쓰도록 합니다.”

9월에는 교내 문학사랑 공모전을 열어 친구들의 작품도 받아 학교축제 때 창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공모전에서 선정된 작품들도 책 2부에 수록했다). 시뿐 아니라 소설도 큰 종이에 출력해 보드에 전시했더니 의외로 많은 친구들이 관심을 보였다. 11월엔 본격적으로 《문학사랑》도서 편집에 매달렸다. 각자 마음에 드는 자신의 작품을 선택한 후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읽고 점수를 매겨보며 1년 동안 쓴 작품들을 정리했다. 동아리 부원들은 작품들을 선별하고 편집하면서 친구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과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웠다.
 

   

책을 편집하는 모든 과정은 동아리 부원들이 직접 했다. 김 교사는 편집권을 전적으로 부원들에게 맡겼다. 모두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작품별로 각자 평점을 매기고, 촌평을 하면서 문집에 작품을 넣을지 말지 의견교환을 하는 과정은 작품 보는 안목을 기르는 좋은 공부가 됐다. 김 교사는 “밥이나 간식을 사주며 편집과정을 독려하되, 아주 가끔씩 학생들이 놓치는 작품성 있는 글들을 챙기는 선에서만 관여했다”고 말했다.

12월엔 단행본 발간에 맞춰 《문학사랑》출판기념식도 조촐하게 개최했다. 동아리 활동 경과보고와 함께 교장선생님께 도서 헌정도 하고, 부모님과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자신의 작품이 책에 실리는 경험을 한 문학사랑 동아리 부원들은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선배 김지연 양은 “편집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힘들어 평소보다 슬럼프가 자주 왔다. 한동안 글도 안 써지고 잠을 설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3년 동안 책을 3권이나 만들어 봐서 이제는 혼자서도 책 한 권은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3학년 김해린 양은 책 출판 당시 캐리커처 디자이너로도 활약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것을 눈여겨 본 김 교사의 권유로 문학사랑 동아리에 들어왔다. 김 양은 “동아리 부원들 한명 한명의 특징을 찾아 캐리커처를 그리는 게 쉽진 않았지만, 책에 실린 내 그림을 보자 그릴 때의 고생스러움이 싹 달아났다”고 기뻐했다.

동아리 인원은 한 해 7명만 선발한다. 소수 정예만 뽑는 동아리냐는 질문에 한편으론 맞고, 한편으론 틀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교사는 “체험활동을 나갈 때 승합차 탑승 정원이 딱 8명이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답했지만 그 속에는 “혼자서는 더 많은 인원이 수시로 써 오는 글들을 봐 주고 문학적 소양을 길러주기에는 힘들다”는 실질적인 고민이 숨어있었다. 김 교사는 “문학적 재능이 있는 친구들을 키우거나 활동 저변을 넓혀주는 방향을 찾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 부원들이 쓴 시는 쉽게 술술 읽힌다. 시인 윤동주는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지만, 시가 술술 읽히는 것은 10대 소녀들의 생활과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내일의 시인, 소설가, 수필가, 작가들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글쓴이] 정선영 객원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