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역량

[Vol.29] ‘다재다능 인재의 시대’ vs ‘완벽한 사람은 없다’


⑦동양과 서양의 접근법

 

미래 필요한 역량을 알아보기 위한 꿈트리의 여정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1~3회에서는 미래 역량과 관련된 지구촌의 다양한 움직임, 국내 교육계의 대응, OECD의 ‘교육 2030’ 프로젝트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4~6회에서는 미래 역량을 지식, 실천, 인성 등 3개의 축으로 나눠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미래 역량 논의에 있어 동양과 서양의 접근법에 어떠한 유사점이 있는지, 차이점은 무엇인지 알아볼까 합니다. 최근 서양의 학자들은 지식, 실천, 인성 등 세 영역의 역량에 기반해 한 개인이 도달해야 할 인재의 모습으로 ‘M자형 인재(여러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동시에 이를 서로 연결시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는 인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IT 기업인 IBM은 한 때 미래형 인재의 모습과 관련해 ‘T자형 인재(폭넓은 지식을 갖춘 동시에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도 갖춘 인재)’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폭넓은 지식과 깊이 있는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이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최근에는 T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생 ‘여러’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이를 ‘연결’까지 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M자형 인재’를 미래의 인재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OECD 교육부문 책임자인 안드레아스 슐라이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전문형 인재(specialist)와 다방면형 인재(generalist)로 나누지 않는다. 오늘날은 다재다능한 인재(versatilist)가 중요하다. 이들은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는 상황과 경험에 심화된 스킬을 적용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역량을 습득하고 관계들을 만들어가며 새로운 역할을 떠맡는다. 이들은 또한 끊임없이 적응하고, 학습하고, 성장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을 차별화하고, 필요한 경우 재차별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재다능한 인재’를 미래 인재로 상정하고, 그들이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엄청난 역량인데요, 과연 이런 역량을 보편적으로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교육시스템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미래 역량을 강조하다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엘리트 교육주의’가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역량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개인의 경쟁력은 높아질 것입니다. 지식, 실천, 인성 모든 영역에서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라의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능력 있고 착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공동체는 아마도 서양에서 이르는 ‘유토피아’, 동양에서 이르는 ‘무릉도원’에 가까운 사회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3000년 전 동양의 한 지혜로운 이가 당부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군자는 자신의 혈육을 소홀히 하지 않고, 대신들에게 원망을 품게 하지 않으며, 큰 죄가 없는 한 공신은 버리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완벽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의 주인공은 중국 주나라 건국의 영웅인 문공(文公)입니다. 문공은 자기 대신 노나라를 다스리게 된 아들에게 이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문공은 왜 아들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완벽함을 기대하지 말라’고 일렀을까요? 그건 아마도 사람은 누구나 부족함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소망일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진리에 가까운 사실입니다. 주나라의 문공은 아마도 이런 점을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깨달은 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 문공은 고사성어 ‘악발토포(握髮吐哺)’의 주인공입니다. 자신에게 사람이 찾아오면 그게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머리 감던 것도 중단하고, 씹던 밥도 뱉으면서 맞이했다고 합니다. 주 문공은 인재를 얻기 위해 하루에 70여 명을 만났을 정도로 많은 이들을 접했는데, 그렇게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미래 역량을 논하다 갑자기 3000년 전 고사성어를 끄집어 낸 이유는 우리의 미래 역량 논의가 자칫 ‘완벽한 사람’을 목표로 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느냐라는 질문은 매우 철학적이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완벽한 인간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누군가는 그런 사람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완벽하다는 말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어찌됐든 3000년 전 주나라 문공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의 결론이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역량도 없습니다. 본능을 조절해 가며 남과 공존하는 법을 깨닫도록 하는 것, 저마다 타고난 적성을 잘 계발해 문제를 해결해 가며 자립에 이르도록 돕는 것, 함께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며 보람과 행복을 느끼도록 돕는 것…. 이런 것들이 교육을 통해 이뤄야 할 어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 문공은 중국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가 존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공자는 꿈에서라도 주 문공을 뵙고 싶다고 평소 말했다고 하는데요, 공자 역시 현대의 ‘미래 역량’ 논의에 매우 강력하고도 시의적절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3가지 차원에서의 역량, 즉 현대적 지식의 습득,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는 스킬(4C), 경청과 존중의 인성 등을 공자는 이미 2500년 전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용어가 좀 다를 뿐이죠. 지식, 실천, 인성을 공자는 지(智), 덕(德), 용(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사상에서 지(智)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닌, 배우려는 자세에 가깝다고 제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덕(德) 역시 선을 베푼다는 의미보다는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에 가깝다고 이야기합니다. 끝으로 용(勇)은 용감한 마음보다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겸손한 마음에 가깝다고 이릅니다. 공자의 지덕용 사상은 현대 서구 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지식, 실천, 인성과 정확히 맞물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히는 공자는 평생에 걸쳐 배움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배운 것을 실천하는 데 힘쓰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겸손함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서구 학자들이 지식, 실천, 인성 간 균형을 강조하는 것과 많이 닮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완벽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 ‘사람다운 삶’임을 동양의 현인들은 일러 주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역량 강화 교육을 추구하면서 아이들에게 유비의 덕과 제갈량의 지혜, 장비의 무용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구의 역량 이론은 자칫 잘못 이해할 경우 ‘다재다능하고 완벽한 인간상’을 상정할 위험이 다분합니다. 하지만 동양권에서는 그런 사고에 익숙하지 않죠. 문공과 공자의 예를 들어 살짝 기원을 살펴봤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에 열광했지만, 정작 스티브 잡스 본인은 동양의 명상에 심취해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보완한 것이지요. 미래 역량을 논할 때에도 이러한 균형과 보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춰보면 미래 역량을 갖추는 일은 매우 복잡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배움에 대한 열망, 아는 것을 실천하려는 의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 이 세 가지를 갖추면 미래 역량에 매우 가깝게 다가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T자형 인재니, M자형 인재니 이런 말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지우고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잘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 역량이 부족하다면 분명 우리의 시스템에 ‘배움에 대한 열망, 실천하려는 의지, 겸손한 마음’을 꺾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할 겁니다. 이런 부분을 잘 찾아서 없애 주는 것이 어른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짊어져야 할 책무가 아닐까요?

[글쓴이] 최중혁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