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

[Vol.36] ‘오래된 미래’를 향한 인재 - 현대적 장인(匠人)으로부터 배우다


[전문가의 눈] 장원섭(연세대학교 교육학부)

 

인공지능과 로봇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산업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무척 편리한 세상이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이 하던 많은 일들을 기계가 위협할 것이라고 전망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호들갑을 떨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노동경제학자인 허재준 박사가 말했듯이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고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미지의 새로운 사업과 일들은 끊임없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전문가인 이경전 교수는 인공지능이란 그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기계라서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하나의 최적화 도구일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누가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만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부리면서 더 깊고 더 넓게 인간다운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그런 역량을 가진 인재들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일은 인간 삶의 기본적 활동이고 중심에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산업 사회에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일의 개념과 세계는 그 양태가 달라져왔고 미래에도 계속 달라질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 등을 기반으로 하는 자동화가 그 변화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제 정형화된 일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 사회에서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지식과 기술, 창조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더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협력하고, 감성적이며,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의미 있게 일하는 것(meaningful work)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일의 결과물을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일의 재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의 과정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자기 자신을 쏟아 부으면서 열정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렇게 일할 때 비로소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생산과 서비스가 만들어 질 수 있게 된다. 아주 작은 일이라고 여겨질지라도 정성을 다하여 진심을 담아내고 스스로 의미를 찾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일하기가 필요하다. 독일의 <노동 4.0>에 의하면 노동 시간과 노동 공간의 유연성이 커지는 시대에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결국, 자신의 일하는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으로서 필자는 ‘장인(匠人)’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장인은 전통적 수공업자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더욱 확장된 의미의 현대적 장인을 뜻한다. 필자는 한복, 도자기 같은 전통 분야와 보일러, 자동차, 양복, 제과 등 기능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IT 전문가, 조각가, 배우 등을 포함한 현대적 장인들의 일하고 배우는 삶에 대해 연구했다. 이들이 하는 일의 내용과 직무를 수행하는 방법 등은 상당히 달랐지만, 자기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일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한 특성을 나타냈다. 이러한 특성이 ‘장인성(匠人性)’이다. 장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장인정신을 갖는 것을 넘어서, 장인성을 몸에 배고 행동 습성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일한 결과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 장인성은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장인은 성장에 대한 의지를 가진 자다. 우연한 계기로 자기 일에 입문했다고 해도 장인은 그 기회를 살려서 최고의 위치까지 이른다. 처음부터 그 일에 소명의식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인은 고된 과정일지라도 우연을 필연의 길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열의와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성광호 명장은 어릴 적 꿈이 경호원이 되는 것이었지만 아주 우연하게 보일러 일을 시작하였고 그 일에서 대한민국 명장에까지 올랐다.
둘째, 장인은 지독한 학습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을지라도 장인은 그 일의 분야에서 성장하기 위해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오랜 기간의 혹독한 숙련의 과정을 견뎌낸다. 경험과 지식을 통합하면서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다. 국제중재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김갑유 변호사는 실제 재판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끊임없는 반복 학습을 하였고, 그럼으로써 자신만의 노하우와 감각 그리고 창조력을 발휘하는 높은 수준의 전문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셋째, 장인은 일의 해방자다. 일을 회피하거나 도망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일 자체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일 그 자체에서 성장한다. 일의 참된 본질을 발견하고 그 일의 리듬을 자신의 리듬으로 만들어 행함으로써 일 자체를 해방시킨다. 안창현 명장은 제과 일의 참다운 본질을 인식하고 몸에 좋은 빵을 만들겠다는 일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오랜 기간 묵묵히 좋은 빵을 만들어 온 결과로 프랜차이즈 제과점이라는 거대 자본의 위협을 이겨냈다.
넷째, 장인은 창조적으로 일하는 자다. 전통을 고수하고 전승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고 확장한다. 새로운 일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일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럼으로써 일의 지평을 넓히고 새롭게 창조하는 힘을 발휘한다. 백애현 한복 장인은 전통 분야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프린팅 기법을 활용하고 가죽으로 한복을 만들기도 했고, 애견 한복을 만든 적도 있다.
다섯째, 장인은 배움을 넓히는 자다. 최고의 숙련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배운다. 일 자체가 성장의 주요한 발판이 되고 느슨하지만 열린 관계 맺음을 하면서 배움을 넓힌다. 일의 확장과 창조는 이런 배움을 통해 가능하다.
여섯째, 장인은 배움을 베푸는 자다. 장인은 평생에 걸쳐 힘겹게 얻은 배움을 공동체와 후속 세대를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나누고 남김으로써 일의 세계를 돌본다.
일곱째, 장인은 정상에 오른 자다.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가진다. 그 결과는 일에 있어서 큰 성과와 높은 지위로 나타난다. 장인은 그 정상의 기쁨과 희열을 경험한다. ‘워커즈 하이(worker’s high)’를 느낀다.
여덟째, 장인은 고원에 사는 자다. 정상의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 맛을 보기 위해서 정상 주변의 높은 지대에 머무른다. 거기서 언제든 더 높은 정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자기와의 경쟁 같은 고원에서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런 힘겨운 삶을 기꺼이 감내하고 즐긴다. 오광섭 조각가는 최고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 느낀 절정의 ‘맛’을 잊을 수 없어서 계속 일과 직면한다고 하였다.

장인성(匠人性)은 일터에서의 메타 역량에 해당한다. 그것은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으로서 계속적인 학습과 성찰에 관련한다. 새로운 산업 시대에 필요한 장인을 육성하기 위해 깊은 숙련을 형성할 수 있는 맥락(context) 중심의 교육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장인은 넓고 일반적인 역량을 갖기보다는 좁고 특수한 분야에서 고도로 숙련된 사람들이다. 깊은 숙련의 끝에서 창조적으로 일한다. 문제해결력, 대인관계 능력, 의사소통 능력, 창조력 같은 일반적 기초 역량의 형성도 일의 맥락과 관련되고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깊은 숙련 속에서 맥락적으로 더 적절하게 형성될 수 있다. 최고의 숙련 또는 전문성의 형성은 맥락화의 지속적인 재맥락화를 통해 가능하다. 장인은 자신의 분야에서 깊이 숙련된 다음에 그 안에서 또 다른 인접 분야들을 접목시킴으로써 자신의 일의 범위를 넓히고 재맥락화한다. 재맥락화를 통한 창조적 일하기는 온 몸과 마음을 합쳤을 때 일어난다. 온 몸과 마음을 자신의 일에 깊이 담아낸 결과로 숙련도 창조도 이루어진다. 결국, 장인들이 배움과 성장에의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깊은 숙련의 과정을 거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장인으로 성장하려는 의지를 갖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발적인 배움에의 길을 걷도록 북돋우고, 이와 동시에 그런 장인으로 성장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일터와 경제사회적 여건을 조성하여야 한다.

새로운 산업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 혁신은 전통적 교육이 추구했던 목표와 내용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연속선 위에서 새로운 능력의 육성이 추가돼야 한다. 새로운 산업사회로의 전환은 기존 산업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여전히 더 많은 장인을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의사나 변호사 등을 대체한다고 걱정하지만 여전히 생체·기계적 로봇을 만들기 위해 정밀기계와 복합재료에 대한 고도의 기술과 장인적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여전히 장인을 키우기 위해 요구되는 오랜 각고의 노력과 숙련이 교육에 필수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닌 기존 산업을 떠받들던 장인의 확장된 버전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때때로는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바둑 기사인 이세돌과 커제마저도 이미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졌다. 오래 전에 인간의 육체적 힘을 초월한 기계가 이제는 인간의 지력을 넘어선 것이다. 더 이상 수 싸움을 하는 방식으로 일해서는 인간의 미래가 어둡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일과 배움에서 새로운 길은 여전히 열려있다. 장인처럼 일하고 배워서 성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오래된 미래’를 찾아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현대적 ‘장인’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일의 교육은 본래 ‘성과’나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이야기다. 인공지능 기계와의 수 싸움이나 경쟁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고유한 열정과 진정성을 담아 일하며 성장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여야 할 때다.

[글쓴이] 장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