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

[Vol.39] 가르치지 말고 가리켜라 - 미래 사회는 모범생보다 모험생을 원한다


[전문가의 눈] 지식생태학자 유영만(한양대학교 교수)

기술의 발전은 교육방식의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기술은 교육의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이 인간의 복잡하고 힘든 학습과정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처럼 장밋빛 미래 전망을 제시하는 기술 종속적 교육관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러닝(e-Learning), 모바일 러닝(m-Learning), 유비쿼터스 러닝(u-Learning), 소셜 러닝이나 스마트 러닝(s-Learning),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 이 모든 학습전략을 융복합시켜 사용하자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등 기술발전 추세에 발맞춰 다양한 학습전략이 신출귀몰하고 있다. 러닝(learning) 앞에 붙은 모든 형용사, 예를 들면 electronic, mobile, ubiquitous, social, smart, flipped, blended는 학습의 본질을 바꿀 수 없다. 다만 학습방식을 바꿔서 효율성은 높일 수 있다. 진정한 학습(學習)은 배우는 형식(學)에 있지 않고 익히는 방식(習)에 따라 달라진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는 학습은 진정한 학습이 아니다. 배우는 과정을 기술이 도와줄 수 있지만 익히는 과정을 기술이 대신해줄 수 없다.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학습 주체의 고단한 노동이다. 몸을 움직이며 힘들게 내 것으로 체화시키는 접촉 중심의 교육이 인간의 촉감을 발달시키고 감각적 깨달음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교육은 자꾸 기술 의존적 성향을 강조하면서 접촉이 없는 접속 중심으로 간다. 접속해서 ‘검색’할 수 있지만 인간의 ‘사색’을 기술이 대신해줄 수 없다. 인간적 접촉이나 실제 문제 상황과의 직접적 접촉이 없는 접속은 지식을 내면화시키거나 체화시켜 나만의 핵심역량으로 집대성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나아가 미지의 세계로 ‘탐색’하는 과정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학습자가 발 벗고 나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색(思索)이 없는 검색(檢索), 탐색이 없는 사색은 둘 다 사색(死色)이 될 수 있다. 배우는 속도를 강조하지만 익히는 밀도는 점차 줄어들고, 편리한 학습을 주장하면서 편안한 학습자를 대량 양산하고 있다. 진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불편하고 힘들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검색해서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에서 더욱 강조할 분야는 주어진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속성으로 뭔가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습득한 정보를 문제 상황에 적용해서 지식으로 숙성시키는 노력이다. 불편함을 기계가 대신해주면서 인간은 점차 더 편리한 기술을 활용해 학습하는 과정도 기계에 맡기려고 한다. 학습의 효율성은 기술 덕분에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지만 진짜 배워야 될 내용을 배우는지의 여부를 물어보는 학습효과는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기술은 스마트(smart)해지지만 인간은 점차 스튜핏(stupid)해지는 암담한 현실, 우리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 하면서 교육은 혁명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인간지능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복잡한 기능을 인공지능은 아주 쉽게 처리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쉬운 과제를 인공지능은 애를 먹으며 진땀을 흘린다. 인간의 지능으로 축적한 지식을 인공지능은 잠도 안자고 빠른 속도로 학습해서 잊어먹지도 않는다. 인간지능으로 축적한 인간의 지식은 인공지능도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습득한다. 인간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지식은 인간의 고유한 경쟁력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지능을 넘어 지성, 지식을 능가하는 지혜를 개발하는 길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언어를 매개로 가르칠 수 없다. 지혜는 오로지 당사자가 다양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온몸으로 체험하는 가운데 체득된다. 아인슈타인은 지식과 지혜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지식은 학교교육을 통해서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시행착오를 직접 체험하면서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지식의 단순한 누적이 지혜를 낳지 않는다.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패러다임을 지혜를 깨우치는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과감한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지능 및 지식과 지성 및 지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슈퍼제너럴리스트’의 저자 다카시 히로시는 ‘지능’이란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 대해 재빨리 정확한 답을 내놓는 능력이지만 ‘지성’이란 ‘답이 없는 물음’에 대해 그 물음을 계속 되묻는 능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누군가 던진 질문에 정답을 찾는 능력을 배워왔다. 미국의 저술가 캐빈 켈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계(또는 인공지능)는 답을 하기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질문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정답을 찾아내는 지식은 인공지능이 이미 인간지능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단순히 주어진 문제에 대답하는 지식보다 그 대답이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동일한 대답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대답하는지에 따라서 대답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대답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은 지혜다. 예를 들면 사랑이 막 시작되는 단계의 연인들이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과 꽤 오랫동안 사귄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가 다른 것을 인공지능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지성으로 개발되는 지혜는 정답이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건 속에 담긴 사연과 사고 속에 담긴 의도가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해내는 힘이다.

인공지능으로 창조되는 지식을 능가하기 위해서는 인간지성으로 지혜를 개발, 딜레마 상황에서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교수-학습 방법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호기심을 기반으로 질문하는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수동적으로 앉아서 주어진 지식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은행 저금식 교육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방법이다. 미래 사회는 질문으로 새로운 관문을 열어가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 앉아서 대답하는 학생은 모범생이다. 그들은 먼저 문제를 제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미래 사회의 인재상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문제아(問題兒)다. 문제아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모범생이 아니라 누구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 놓고 그 답을 이전과 다르게 찾아가는 모험생이다. 답을 찾기 위해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는 모범생과는 다르게 문제아는 문제를 일으키고 파란을 불어오는 모험생이다. 지금까지는 가르쳐 주는 대로 말 잘 듣는 모범생이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인재상이었다. 모범생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정답을 가장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학교는 이런 모범생을 기르기 위해 잘 짜여진 각본과 계획을 던져주고 그 안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한 마디로 모범생은 말 잘 듣는 학생, 정해진 규칙과 규율을 잘 지키는 학생, 그리고 엉뚱한 발상을 가급적 삼가고 정상적인 사고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는 학생이다. 이들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이 방법은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암기식으로 배우는 교수-학습방법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가 길러내야 될 미래의 인재상은 모험생이다. 모험생은 미지의 세계로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면서 한계를 돌파하려는 탐구심이 풍부한 인재다. 모험생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Fast Follower가 아니라 없던 길을 개척해서 스스로가 길이 되어 전진하는 Path Breaker다. 이들은 가르치기보다 방향을 가리키고 스스로 답을 찾아 가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연초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이 한 말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검색에 열중한 나머지 자기만의 주관적인 생각의 힘을 키워가는 사색은 물론 미지의 세계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탐험으로 모험심을 기르는 모험생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사색할 수 없고 탐색할 수 없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책을 읽고 사색하면서 사고력을 기르고 몸을 움직여 탐험하면서 체험적 지혜를 쌓아가는 교육으로 과감하게 선회할 때 4차 산업혁명을 교육혁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접속과 검색으로 정답을 찾으려는 모범생은 여전히 누군가가 가르쳐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사색과 탐색을 즐기는 모험생은 가르치는 방법보다 가리키는 방향을 몸을 던져 행동하면서 배워나간다. 미래 교육은 모범생에게 정답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모험생에게 현답을 찾아내는 방향을 가리켜 스스로 사색하고 탐색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방법으로 과감하게 전환될 필요가 있다. 자유학기에서 추구하는 교육방법이 스스로 방향을 찾아 사색하고 탐색하며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모험생 육성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활동 중심의 체험학습을 통해 몸으로 익히는 지혜를 체득하고 과정 중심의 평가활동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고 성장하는 교육으로의 과감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교육 패러다임이 바로 자유학기가 꿈꾸는 교육적 이상이다.

[글쓴이] 유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