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

[Vol.40] 평가의 힘, 교육의 힘 : 교육평가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전문가의 눈] 권오현(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학교교육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오늘날 학교는 능력을 갖춘 사람보다는 그 능력을 사회적 맥락에 맞게 실행하여 자신과 공동체에 도움이 되게 하는 사람을 키우려 한다. 이러한 사람을 일러 역량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능력이 특정 분야의 탁월한 지식과 기능을 갖춘 상태를 지칭한다면, 역량은 그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 활동을 바르게 수행하는 포괄적 자질을 의미한다. 즉 역량은 ‘개인의 효과적이고 뛰어난 수행과 인과적으로 관련된 내적 특성’으로서 지식, 태도, 동기, 자아관, 실천의지 등 다양한 자질을 두루 포함한다. 2015개정 교육과정은 지식의 양과 학력을 동일시 하는 정적인 학력 개념에서 벗어나 지식을 운영하는 개인의 전략이나 태도까지도 아우르는 역량기반 학력을 추구하는 특징을 지닌다.

역량기반 학력을 갖추려면 학생들은 교실수업에서 지식의 수동적 흡수에 머물지 말고, 선생님이 전해주는 지식을 자신의 사고 틀 속에 수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영역을 적극적으로 디자인해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교실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의미있는 지식을 선별, 분류, 재구성, 유통하려는 자세와 자기주도적으로 지식 활용을 설계하려는 마음가짐이다. 학교는 학생이 수업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함으로써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 즉, 교사가 동일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학생 각자가 지식들을 모아 스스로 주요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요즈음의 학교는 가르침 teaching의 공간이 아니라 배움 learning의 공간이라 부른다.

이러한 수업 변화의 성공 여부는 평가의 변화와 맞물려 있는데, 평가를 바꾸는 일은 더욱 어렵다. 역량기반 학력은 교과 능력을 확인하는 성취도가 아니라, 다양한 핵심역량을 균형있게 갖춘 상태임을 진단하는 새로운 평가 개념, 다시 말하면 ‘교육적으로 얼마나 적합한가?’를 진단하는 총합적 접근방식을 필요로 한다. 특히 2015개정 교육과정은 핵심역량 계발과 학생참여형 수업을 강조하는 만큼, 인지적 능력에 대한 진단만이 아니라 정의적 영역과 사회적 자질을 두루 아우르는 종합적 평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종합적 평가는 그것이 성적으로 나타나든 서술식으로 제공되든 교사의 정성적 판단을 거쳐야 하는데, 정량적 수치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상황에서 교사의 주관적 판단은 학부모의 공감을 얻기가 참 힘들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공정한 평가’와 교육적으로 ‘타당한 평가’ 사이에서 한국적 풍토에 맞는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학교에서 평가는 학생들의 발전과 성취를 지원하는 기본 장치임을 교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교육평가는 교사가 영역 내 설정된 특정 기준에 의해 전문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활동을 말하는데, 이러한 평가는 학교에서 배움의 흐름과 성장의 과정을 확인하고 거기에서 드러난 빈곳을 채워주는 학습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좋은 학교란 ‘평가의 힘’을 곧 ‘교육의 힘’으로 잘 활용하는 학교이다. 그래서 『학교혁명』의 저자 켄 로빈슨은 “평가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학습으로서의 평가”라고 하였다. 여기서 학습으로서의 평가란 교사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에 기반을 둔 평가계획을 수립한 다음에 실제 지도 과정에서 개별 학생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판단하고 이를 기반으로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과정중심 평가를 의미한다.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 과정에 활용하는 것 없이 제3자를 위해 순위 매김의 기능만 수행하는 평가형태는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이제 우리의 학교교육도 미래 사회에 부응하는 인재를 육성하려면 순위 중심의 평가 틀에서 벗어나 성취평가 체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성적에 의한 순서보다는 성취기준에 따라 이수 수준을 판단하는 평가 환경이 만들어지고,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 진로나 취향에 따라 다양한 과목들을 선택하여 이수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성취평가는 다른 학생들과의 비교에 치중하는 상대평가와는 달리,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근거한 판단으로서 일정한 교육목표에 도달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수준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 사실 성적에 의한 서열은 공급자의 눈에 맞춘 ‘순서’일 뿐이지 교육적 ‘차이’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차이는 학생 각자가 가진 관심, 성향, 목표의 다양성에 존재한다. 교실수업에서 여러 평가유형, 즉 진단, 형성, 총합평가를 균형있게 활용하고 개별 학생을 타인과의 비교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풍토를 조성하는 것은 학교교육의 본연적 모습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평가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평가’의 힘을 믿을 때이다.

학교에서 평가철학을 바꾸는 것은 우리 교육이 타인과 비교하는 ‘자존심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적 성숙을 지원하는 ‘자존감 중심’으로 바뀌는 출발점이 되리라 본다. 논어에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는 말이 있다. 자기에게서 구하는 사람은 타인과 견주기보다는 스스로 끼를 개발하는 데 매진하는 반면에, 남에게서 구하면 주변과의 비교를 내밀히 진행하며 티를 내어야 만족하게 된다. 끼가 자기존중과 계발에 충실하게 하는 자존감이라 한다면, 티는 타인과의 상대적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남을 통한 자기 확인만이 믿음직한 성과라는 심리가 굳건히 자리 잡아 왔는데, 학교교육부터 이런 사고와 심리를 극복하는 데 앞장선다면 사회적 인식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입전형의 평가철학도 바뀌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대입전형에서 시험에 집착해 온 것은 비교가 지원자와 대학의 내적 동의를 얻기 쉬워서였다. 이러한 비교에 대한 무한 신뢰는 학교교육과 대입전형을 교육의 본질에서 차츰 멀어지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역주행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들 중의 하나가 계량적 비교 방식을 걷어내고 지원자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중심으로 개인의 성장과정을 심층적으로 보려는 시도들이다. 예를 들어 학생부종합전형은 타 지원자와의 기능적 비교에서 벗어나 지원자 각자가 자신을 키워가는 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었고 그 결과를 어떻게 만들어 내었으며 앞으로 그의 모습이 어떨지를 따져보려 한다. 이러한 방식이 상대적 비교에 의한 공정성 요구와 병립해야 하는 데에 우리나라 대입평가의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다. 학생부종합전형과 같은 학교교육 친화적 평가체제가 자리를 잡는 것은 나보다 계량적 점수가 낮은 학생은 합격하였는데 내가 떨어진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비교의 늪에서 수험생, 학부모, 언론, 우리 사회가 헤쳐 나오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평가의 새로운 모습을 추구함에 있어서 비교의 늪에 머무는 국민들의 의식과, 학교교육의 본연에 충실한 평가철학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해답은 대학입시와 학교교육의 연계성을 더욱 강화해 가는 데 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입시와 무관하게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고 대학이 대입평가를 학교교육을 출발점으로 설계하는 ‘학교-대학 연계교육’ 관점이다. 한국의 교육풍토 속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학교교육의 모든 문제가 대학입시는 경쟁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라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보니 발생한 것이기에 그러한 사고구조에서 벗어나는 환경을 차근차근 마련해 가야 한다. 입시는 인위적으로 준비하기보다는 학생 스스로 자기 계발을 행하고 대학이 추후 이를 대입평가에 반영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과거처럼 입시가 거대한 댐으로 군림하며 대학이 설치해 놓은 결승점으로 학생들이 힘겹게 헤엄쳐오는 방식으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를 키우기 어렵다. 수능시험이라는 웅장한 댐을 올라갈 부담없이 학교교육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채 성장의 힘을 스스로 키워갈 기회를 갖게 한다면, 학교교육은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인재를 효율적으로 육성하는 터전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학교교육은 차세대에게 미래 한국을 살아갈 동력을 키워주는 사회적 기제로 역할을 한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 고등학교의 학생 과목선택권, 대입의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연결고리는 지금까지 국가정책이 무수히 시도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교육적 체질 개선을 가능하게 하리라 기대된다. 특히 학생들이 중학생 때부터 자유학기제를 통해 시험에 대한 부담없이 역량기반 학력을 쌓기 시작한다면, 이는 미래 인재로 성장할 중요한 바탕을 형성함은 물론이고, 학교교육의 자연생태계가 회복되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한 변화의 힘은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통한 수업과 평가 개선에서 싹을 틀 수 있다. 교실수업이 강의와 협동학습, 탐구활동을 조화롭게 운영하고 그 속에서 평가가 학습 과정을 효율적으로 지원한다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기맞춤형 성장을 이끌 내적 근력을 다져갈 것이고 이는 나중에 학교교육 기반으로 대입전형을 준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학생 때부터 지식의 수동적인 흡수에 매달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식을 탐색하고 확장하는 자기 디자인의 열정을 갖추어야 한다. 수업과 평가의 개선을 통해 학생 각자의 ‘자기다운 모습’이 결국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되도록 지원하는 교육 생태계가 우리나라 학교에 더욱 무르익으면 좋겠다.

[글쓴이] 권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