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

[Vol.41] 21 세기 교육, 융합 너머 길 있다


[전문가의 눈] 정찬필(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

 

스팀나는 이야기, STEAM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력고사 세대로서 '창의, 융합, STEM, STEAM, 프로젝트' 교육이란 표현은 낯설기 그지 없었다. 국어면 국어, 수학이면 수학, 가르쳐주는 선생님 말씀 잘 새기고 신경 곤두세워 한 문제씩 따박따박 풀어가면 그럴듯한 성적표 챙겨가는 깔끔하고 '공정한' 시스템에서 평생을 살아왔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처음 교육의 위기와 그 극복 방법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2013년 초의 일이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교육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그럴싸하다 생각했지만, 당시 중2 아들을 둔 처지에서 아주 흔한 의문이 튀어올라왔다.
이렇게 한다면 “진도는 다 나갈 수 있나? 깊이 있는 교육이 되나?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될까?”
이후 만난 수 많은 현장 교사들은 다른 각도에서 불가능과 무의미를 입을 모아 말했다. "무기력하게 잠든 학생들로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아이들과 창의, 융합 프로젝트 교육이 어떻게 가능?" 혹은 "이벤트로 한번은 해볼 만 하겠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일상화는 불가!" STEAM 얘기를 들을수록 머리에 스팀이 난다는 아재개그도 곁들여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융합교육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공감할 수 없는데 있었다. 그러니 모두에게 안되는 이유만 도드라져 보일 수 밖에…. 이 의문은 이후 교육혁신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본격적으로 21세기 교육의 본질에 대한 연구 후에야 가닥이 잡혔다. 무엇 때문에 기존 학교 교육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소위 핵심역량을 교육의 목표로 바꾸어야 하는지, 아니 거꾸로 이렇게 방향 선회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사회의 지속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지를 이해하고 나서의 일이다.

코끼리는 분절된 과목으로 읽어낼 수 없다

벌써 15년 전인 2004년 미국의 연구기관 P21은 21세기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완전히 재정의한 새로운 교육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4C로 불리는 비판적 사고, 소통, 협력, 창의력(Critical Thinking, Communication, Collaboration, Creativity)이 학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방향 전환이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이 세상이 원하는, 세상에서 쓸모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능력의 세트라고 정의하기 때문이었다.
2013년 워싱턴 DC에서 직접 만난 당시 P21의 대표 Stephan Turnipseed는 그 역량 세트가 진짜 세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협력적 문제해결 능력'의 구성요소이자 프로세스를 의미한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제서야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왜 기존의 과목형 교육이 문제였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공교육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다음 세대가 세상에서 살아갈 능력을 길러주어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행복과 번영을 만들어 내도록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는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존재 이유가 된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시작된 보편적인 학교 시스템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상에 대한 핵심적인 이해방법을 과목으로 만들어 전달해왔다. 이는 꽤나 오랜 동안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공장에서 포드시스템, 테일러 시스템으로 분업화, 전문화를 이루고, 표준화된 평가를 통해 능률을 올렸듯 이를 본딴 학교 교육은 문맹을 급속도로 줄이고, 기본적인 계산과 과학적 이해도를 쉽게 향상시키며 세상에 필요한 능력을 길러내어 내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적절한 방법이었다. 비교적 적은 정보와 규칙에 따라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말이다.
문제는 세상의 복잡도가 증가하고 활동범위가 급격히 넓어지면서 발생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정보가 폭증하는 세상이 되자 기존의 학교 문법으로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학교의 지식이 양적으로도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지체현상이 발생한다.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하는데, 역으로 아이들이 접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눈치조차 채기 어렵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질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고도로 연결된 복잡한 구조의 세상에서 분절된 과목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은 제대로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진짜 세상은 과목을 기준으로 단절되어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목을 다 합치면 되지 않느냐고?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를 생각해보자. 앞 못 보는 사람들이 모여 단순한 원뿔, 삼각뿔을 만져보고 그 이미지를 재현해본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코끼리라면 달라진다. 각자의 영역에서 여럿이 만져본 이미지를 합친다고 코끼리가 만들어질까?

진짜 세상의 핵심능력, 협력적 문제해결은 과목 교육으로 불가능

더 큰 한계는 문제해결에서 나타난다. 고도화된 세상에서 개인만의 문제해결 능력은 그 의미가 급격하게 축소된다. 혼자 할 수 있는 문제해결이란 대부분 난이도가 낮은 문제, 그러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극히 제한적이다. 사회적으로 의미있게 평가되는 높은 질의 문제해결은 결국 각각 다른 영역, 다른 장점을 지닌 여럿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때문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기업, 창업 혹은 기타 사회적 조직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특성을 추출해 보면 예외없이 나오는 것이 소통, 협력, 문제해결 능력이다.
이것이 21세기 핵심역량의 본질이며, 교육의 목표가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다. P21 뿐만 아니라, OECD를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교육 프레임워크라고 발표하지만 그 교육적 목표는 다소의 표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곳을 향한다. 협력적 문제해결능력!
그런데, 기존의 교육은 어떠한가? 격벽을 친 과목 안에 지식을 쌓아올리고 시험문제 풀이에 급급했을 뿐 이를 진짜 세상에서 쓸모있는 무엇으로 바꿔놓지도 않았고, 그것이 다른 과목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가 되는지, 또 그걸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무엇을, 어떻게 같이 해야 되는지 연습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초중등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학에서도 대동소이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진짜 세상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인사에 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학교 이름도, 시험성적도 필요한 능력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니 블라인드로 선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대학들이 기존의 표준화된 과목형 평가방식을 축소하고, 종합적인 역량과 잠재력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입시체제를 전환하려 하니, 온나라가 '평가의 공정성'이란 유령의 이름을 내세워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지체와 불일치는 심각한 개인적, 사회적 낭비다.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뭔가 능력을 키웠는데, 결과적으로 누구도 원치않는 쓸모 모를 지식과 성적을 낸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본다면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역으로 세상에서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는데 최적화된 교육을 하면 될 일이다. 과목의 지식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보다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니, 강의와 암기가 아니라, 이해와 응용에 집중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능력이 중요하니, 학생 개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학습하며, 함께 문제해결을 해가는 연습을 계속 반복해가야 한다.
이렇게 방향을 잡는다면, 과목간의 연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모든 미션에서 소통능력을 활용하며 기를 것이고, 한 교과의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그간 다른 교과에서 얻은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연결해 사용해야만 한다. 이쯤되면 교사들에게 융합교육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학생들의 수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 된다.

융합은 선택 아닌 당위, 열쇠는 전환 방법과 순서

이제 융합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 거쳐가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존의 관습적 수업인 교사의 일방적 강의 상태에서는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점이다. 일상적인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작은 문제부터 팀 기반으로 협력하며 해결하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그러니 일단 수업부터 바뀌는 것이 우선이다. 융합은 그 뒤에 따라온다. 덩치 큰 문제해결 기반 교육도 바로 그런 흐름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간 지켜본 '융합교육'을 넘어 문제해결 프로젝트 교육에 성공한 전국 선생님들의 공통점이었다. 자유학기제에서 피어난 수많은 혁신적 융합수업 사례가 그 증거다. 그러니, 무엇보다 일방적 강의부터 버리고 시작하자!

[글쓴이] 정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