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명저

[Vol.30] 자아실현은 함정…‘하나를 위해 전부를 바치지 말라’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강상중 著, 사계절, 2017년)

 

이번 진로명저는 지금까지 소개한 책들과는 조금은 성격이 다른 책을 골라 봤습니다. 미래 전망과 그에 따른 직업세계의 변화, 창업 사례 등을 다룬 실용서 보다는 철학서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철학으로서의 직업론’을 소개합니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은 우리나라에도 꽤 이름이 알려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강상중 교수가 쓴 책입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역경의 시대,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주제로 일본의 방송 NHK에서 한 직업 특강을 정리해 묶어 냈습니다. 저자는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돼 화제가 됐고,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거쳐 현재는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인정받은 강 교수는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폐품 수집상으로 일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 학교에 다니며 자기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저자의 이런 인생 경험이 그만의 ‘직업론’을 형성하는 밑그림이 됐습니다.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대기업이나 유명 기업에 취업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알기 쉬운 목표가 사라진 오늘날,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칠까가 아니라 ‘나에게 과연 일이란 무엇일까’를 물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일본 사회도 버블경제의 붕괴로 학력사회 모델이라는 프레임이 무너지고, ‘개인 경력 모델’이 주류가 됐습니다. 학력을 쌓아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이제 기업은 학력이 높은 사람보다는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하게 대처하며 스스로 자기 활동을 적절히 운영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높은 급여와 안정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내가 그 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18쪽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일과 마주하면 좋을까요. 강 교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것’, ‘다양한 관점을 가질 것’ ‘인문학(고전과 역사)을 배울 것’을 제안합니다. 이 책의 전체를 꿰뚫는 요점이기도 하죠. “지금 이 시대는 잔재주를 부려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때가 아니다”라는 저자의 판단이 더 와 닿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강 교수는 일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일하기를 원하는데도 취업을 못하는 현재 상황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다움’.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한번 내딛어보는 ‘한걸음’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 일은 나한테 안 맞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거나 편식하듯이 해보지도 않고 어떤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기 보다는 기회가 된다면 뭐든지 해보는 편이 좋다는 것이죠.

“‘그냥 한번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도 일단 공식적인 무대에 입장하면 당연하게도 다양한 제3자와의 만남과 접촉이 있습니다.” - 45쪽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는 책 제목을 떠올리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를 위해 전부를 바치지 말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이랄까. 그 처방은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나의 일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 태도는 불성실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역시 어느 정도는 ‘자기방어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 교수는 토닥입니다.

“이제는 기업을 위해 억척스럽게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높은 평가를 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는 일 이외의 시간에 얼마나 다른 가치를 발견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51쪽

‘하나를 위해 전부를 바치지 말라’는 조언은 한 가지 일에 정통하지 못하고 온갖 일에 손을 대는 것과는 다르고, 오히려 다양한 관점을 키워나가는 태도와 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내 안에 몇 가지 서로 대체할 수 있는 채널을 갖는 것이 어떨지 한번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 51쪽

직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자아실현’을 두고 저자는 커다란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현대인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억압’이라고 다소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데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나’를 찾아 실현하라는 요구이고, 환상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지적합니다. 험난한 고용환경에 억눌리고 거기에 자아실현의 압박까지 더해지고 있는 지금, 자신이 보람을 느끼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처지를 보면서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기만 한다면 그들에게 활기가 생길 리 만무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되고 싶은 나’를 마음껏 추구하는 것으로 승부를 내라고 합니다. 그것이 자아실현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도망가지도, 변명하지도 못하는 몹시 괴로운 상황이 아닐까.” - 56쪽

역경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책을 집어 든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자연스러움, ‘있는 그대로’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구애받지 않고 나에게 일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내면에서 솟아나는 동기와 사명감이 이끄는 일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부족함을 안다, 자족한다는 말과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 전부 다 고치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 스스로를 알고 그런 나를 긍정하는 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입니다.” -62쪽

강상중 교수는 아직 취업하지 않은 대학생이라면 여러 가지 일을 해보기를 권합니다.

“다양한 관점을 갖는 것, 많은 경우 이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타자와 만난다는 것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회적 관계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의 미션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됩니다.” -224쪽

[글쓴이] 김봉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