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톡톡

[Vol.41] “영희의 길은 어머니의 길과는 다릅니다”


연예인에 관심 갖더니 성적 뚝뚝 떨어지는 중3 딸

 

▶톡톡 상담: 중3 딸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공부 걱정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머리가 좋은지 뭐든 척척 외우고 인터넷 강의만 듣고도 중 1때는 반에서 1~2등, 중 2때도 2~3등은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연예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인터넷 강의도 거의 안 듣고 맨날 유튜브로 좋아하는 가수 영상이나 보더군요. 그러더니 성적이 뚝뚝 떨어져 지금은 반에서 석차가 중간 정도밖에 안 되네요. 수학, 영어성적도 엉망이라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정작 아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한 달 다닌 수학학원을 가기 싫다며 학원 갈 때마다 전쟁을 치릅니다. 딸은 자기 의지가 없으면 성적이 안 오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로 아이의 성격이 심각하게 내성적이고 말도 없는 편이며 예체능 분야에 재능도 없어요. 그나마 잘하는 게 공부였는데 이것마저 못하면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할지 난감하네요. 그냥 스스로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려야할까요? 그러다 너무 늦어 되돌리지 못할까봐 걱정입니다.


▶톡톡 상담: 안녕하세요. 영희(가명) 어머니. 자녀의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듯합니다. 일단,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학습은 습관입니다.”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강한 동기가 있고, 더불어 의지가 있어야 끈기 있게 공부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런데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의지력을 발휘하기보다 그냥 평소 하던 습관대로 했을 뿐인데 성적이 잘 나옵니다.

그러니 이렇게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지는 개인 영역입니다. 어머니께서 영희의 의지를 아무리 공부 쪽으로 돌리려 애쓰셔도 선택은 영희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습관은 다릅니다. 습관은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한번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영희가 공부와 멀어지게 되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환경적 요인은 무엇인지 잘 살펴보시고 그것을 제거하거나 혹은 변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한 가지씩 짚어나가겠습니다. 뭐든 척척 잘 외우고 인터넷 강의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받았고요. 공부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생각대로 영희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듯합니다. 이해력과 습득력이 좋은 것이지요.

그럼 영희 공부시간의 변화는 어떤지요. 초등 1학년부터 중학생이 되기까지 학습시간이 꾸준히 늘어났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학급에서 보면 정말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 편의 긴 동시도 3분이면 암송합니다. 문제는 실질적인 학습시간입니다. 한 편의 동시를 10분 가까이 되어야 암송할 수 있는 아이들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10분 동안 동시를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런데 3분 암송하면 외우는 아이들은 3분 동안 동시를 읽습니다. 실질적인 학습시간은 오히려 더 적습니다. 이것이 초등 6년 동안 누적되면,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오랜 시간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의 지능 수준으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 내용은 그리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공부하지 않아도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중등은 다릅니다. 내용과 폭이 갑자기 깊어지고 방대해집니다. 인강, 학원이 아닌 스스로 앉아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등 시기나 중등이나 혼자 공부하는 시간(학교, 인강, 학원, 과외 등을 제외한 자기주도학습 시간)에 변화가 없다면 그 시간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영희의 성적이 떨어진 원인으로 ‘유튜브로 연예인 영상 보기’때문이라고 파악하셨습니다. 그럼 이렇게 질문을 하셔야 합니다. ‘영희가 왜 연예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까?’ 어머니 표현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영희는 ‘심각하게 내성적이고 말도 없고 예체능 쪽에 재능도 없는’아이입니다. 그런데 연예인 유튜브에 몰입하는 시간이 늘어난 겁니다.

어머니의 관심은 초등부터 지금까지 ‘공부’에 몰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관심이‘말 없고 많이 내성적이고 예체능 재능도 없지만 그래도 공부는 곧잘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에 멈추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바꾸어 표현하면 영희의 ‘정서’에 몰입해주는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연을 접한 후 ‘영희의 성적이 떨어져서 안타깝다’는 생각보다 ‘영희가 많이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어머니께서는 ‘영희가 어떻게 하면 정신 차리고 공부할 수 있을까’에 몰두하기를 멈추시고, 영희의 심리 정서적 측면에 찬찬히 다가가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영희가 실은 내성적이라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부할 때만 안심하는 엄마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영희가 엑소를 좋아했는지, 워너원을 좋아했는지, 방탄을 좋아했는지…, 만일 방탄을 좋아했다면 어떤 노래, 멤버 누구를 좋아했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영희가 마음을 두는 곳에 영희의 정서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먼저 어루만져 주셔야 합니다. 영희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끊임없이 채우려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정서를 채울수록 공허해집니다. 그 공간과 시간에 어머니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권합니다. 진짜 방탄 콘서트를 데려가거나 공부를 잊은 채 같이 외식을 하거나 이제 아이가 아닌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딸에게 엄마가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말을 건네 보는 등 지금 함께 누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영희가 수학 학원에 가기 싫다고 갈 때마다 전쟁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만큼 하루하루 영희를 설득하는 일이 힘겹다는 뜻이겠지요. 영희가 수학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데는 분명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학원을 굳이 보내지 않아도 우리 영희가 무언가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다면…’이라고 말이지요. 학원을 가지 않는 그 시간 동안 영희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물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물어보셨다고 하더라도 영희가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믿어주고 긍정해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니면 어림없다는 생각으로 일단 학원 수업 진도를 따라가야 뒤처지지 않을 거라 말하며 영희를 설득하려고만 애쓰셨는지요.

아이가 혼자서 무언가를 꾸준히 해보고 그것을 통한 성취감을 맛보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외부의 도움 없이 말이지요. 영희에게 그런 순간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영희에게 학원 대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조금 넓혀주십시오. 그 경험이 영희에게는 동기가 되고, 하고자 하는 의지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영희의 길은 어머니의 길과 다릅니다.”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정신 못 차리고…, 공부 말고는 다른 재능도 없는 아이가 공부는 안하고…, 상황의 심각성도 모르고…’ 해서 답답하고 화가 나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 그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영희 자신입니다. 영희는 어머니께서 말하고 보여주신 그런 세상 속에서 계속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겁니다.

세상에는 어머니께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모든 길이 다 좋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좋은 길이 다 공부로 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영희 네겐 공부 이외에 희망이 없다’는 한 가지 공식만을 주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김선호 유석초 교사(《초등사춘기, 엄마를 이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긴다》저자)